
마치 검은색 잉크를 잔뜩 풀어놓은 듯 다바오만의 바다빛은 푸르다 못해 검푸르다. 암청색 바다의 잔잔한 물결이 뱃전에 부딪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면 언뜻 ‘죽음의 공포’가 떠오를만큼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 바다빛에 매료돼 한동안 바라보다 고개를 드니 아득한 수평선 위로 열대의 자연이 빚어낸 온갖 뭉게구름들이 푸른 하늘을 수놓고 있다. 삭막한 도시에서 쌓였던 찌든 때와 답답함은 어느새 저멀리 날아가 버린다.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남동쪽에 위치한 다바오시에서 40분 거리인 사말섬 펄팜(pearl farm)리조트로 가는 길은 바다빛과 하늘색,하얀 구름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신비가 그대로 묻어난다.
마침내 도착한 펄팜리조트. 펄팜은 일본의 유명진주회사인 미키모토사가 이 섬에서 필리핀 서쪽 술루해에서 채취한 진주를 가공하면서 얻은 이름이다.
이제 진주농장은 사라졌지만 펄팜리조트에선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백사장과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해변,바닷속에서 무리지어 헤엄치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바다위에 떠있는 대나무와 야자수로 만들어진 수상가옥 형태의 방갈로,저 멀리보이는 아포산(해발 2954m)과 다바오만의 검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남국 풍경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사말섬은 ‘유명세’를 타는 세부나 보라카이에 가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특히 ‘바다의 꽃’이라고 불리는 산호의 비경(秘境)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바닷속을 화려하게 수놓는 산호와 열대어의 향연을 즐기고 싶다면 사말섬에서 다시 방카를 타고 40분가량 내달려 ‘코랄가든(산호정원)’으로 가야한다. 산호숲이 4km가량 걸쳐있는 ‘코랄가든’은 그야말로 ‘산호의 천국’. 적도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어 태풍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덕분에 사계절 스노클링과 스쿠버 다이빙,제트스키,카약,윈드서핑 등 모든 해양스포츠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이곳과 파라다이스비치 등 사말섬에만 20여개의 다이빙 포인트가 있다.
사말섬 인근의 바다는 너무 맑고 투명해 마치 깊은 산 속 얕은 계곡에 온 것처럼 밑바닥까지 훤히 보인다. 오색의 산호,그 사이를 누비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 팔을 뻗으면 금새 손이 닿을 것 같지만 수심이 최소한 5m는 된다. 산호와 열대어를 벗 삼아 정신없이 놀다보면 돌고래떼와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도 있는 행운도 온다.
그래도 도시의 찌든 때가 남아 있다면 탈리쿠드섬의 바부산타 해변으로 가보자. 펄팜리조트에서 30분 거리인 이곳은 전기도 전화도 없는 곳. 야영객들을 위해 섬 자체 발전기로 오후 6∼9시까지 단 3시간만 전기가 들어온다. 이곳에서 열대바다의 낙조를 감상한 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코코넛 주스를 마시며 밤하늘을 수놓는 남국의 별빛 아래서 밤의 낭만과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도 좋다.
그렇다고 다바오엔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필리핀에서 가장 높은 아포산 국립공원이 있어 남국 산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다바오에서 1시간 거리인 탈로모산의 에덴 네이처 파크에선 해발 800m의 고지대에서 다바오시와 다바오만을 한눈에 내려다다볼 수 있다. 또 온갖 열대나무와 꽃들이 무성한 열대우림 속 빌라에서 숙박을 하면 수경(水耕) 야채가든과 허브 야채가든에서 유기농 야채와 과일로 웰빙건강식단을 꾸릴 수도 있고,산악트레킹도 가능하다.
로마 가톨릭 건축양식과 이슬람 건축양식의 조화를 보여주는 산 페드로 성당과 희귀 난초인 왈링-왈링(Waling-Waling)등 다양한 난초를 전시하고 있는 말라고스 오키드 가든도 가볼만한 곳.
민다나오는 또한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원숭이도 잡아먹는다는 필리핀 독수리의 고향이며 ‘과일의 황제’로 불리는 두리안의 최대 생산지이기도 하다.두리안은 마치 ‘홍탁’처럼 처음 먹을 땐 지독한 냄새에 코를 막게 되지만 한번 먹으면 계속 찾게 된다. 다만 향이 너무 강해 항공기는 물론 현지 호텔에도 반입이 금지된다.
◇여행메모=인천공항에서 떠나는 직항편은 아직 없다. 마닐라나 세부를 거쳐 필리핀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필리핀항공은 매일 1회 마닐라행 비행기편을 운항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마닐라까지 4시간,다시 마닐라에서 다바오까지 1시간45분이 걸린다. 필리핀항공은 12월21일부터 인천공항에서 다바오로 가는 직항 전세기편을 운항할 예정이다(필리핀관광청 한국사무소 02-598-2290,필리핀항공 02-774-3581).
| |